들어가며: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던진 질문
사도행전 19장에는 흥미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 대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바울처럼 귀신을 쫓아내려고 시도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하는 대로 "바울이 전파하는 그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악한 귀신이 그들에게 대답합니다.
"내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
그러더니 귀신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때리고 옷을 찢어서, 그들은 발가벗긴 채 그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같은 말을 했는데, 왜 바울에게는 효과가 있고 스게와의 아들들에게는 효과가 없었을까요?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이름으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당시 로마 제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황제로부터 공식적으로 권한을 받은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 집정관 - 황제가 임명한 최고 관리
- 총독 - 각 지방을 다스리는 황제의 대리인
- 재무관 - 황제가 직접 뽑은 재정 담당자
- 사절 - 원로원이 승인한 외교관
이들이 "황제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그것은 황제 본인이 직접 명령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명령을 취소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제 자신이나 더 높은 권한을 받은 사람뿐이었습니다.
만약 권한도 없는 사람이 "황제의 이름으로"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황제의 권위를 모독하는 중대한 범죄였고, 심각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었나?
바울은 다메섹 길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부르시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즉,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 관리들이 황제의 권한을 받아 "황제의 이름으로" 일하듯이, 바울은 예수님의 권세를 받아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했습니다.
하지만 스게와의 아들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권한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바울이 하는 것을 보고, 그 말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서 따라 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은 마법 주문과 같았습니다. 마치 요술램프의 지니를 부르듯, 그 이름만 부르면 자동으로 귀신이 쫓겨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에 휘둘리지 않으신다
본문 1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려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기적을 행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려"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단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당신이 일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지, 그 이름을 들먹이는 자에게 휘둘리시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관계없는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마법 주문처럼 사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주 예수"라는 선언의 의미
17절에서 에베소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고 "주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키리오스)"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단어는 당시 로마 황제를 가리킬 때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황제를 "주 카이사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높이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로마 황제보다 높은 분이시다"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선언이었습니다. 이 고백 때문에 수많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은 황제의 이름보다, 이 세상 그 어떤 이름보다 높은 이름입니다. 그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이 꿇어야 합니다.
은화 오만 개의 회개
이 사건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이 행한 일들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마술을 부리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마술책을 가져다가 사람들 앞에서 다 태워 버렸습니다. 그 책 값을 계산하면 은화 오만 개 가량 되었습니다."
은화 1개(드라크마)는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5만 드라크마면 약 137년치 일당, 현대 가치로 환산하면 약 50억~75억 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에베소 신자들은 자신들이 평생 모은, 어쩌면 대대로 물려받은 귀중한 마술책들을 사람들 앞에서 태워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마술의 주문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더 이상 능력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능력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드렸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예수님의 이름은 마법 주문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주문처럼 사용하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마지막에 형식적으로 붙이는 주문처럼, 혹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마법의 열쇠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은 주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빌려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려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능력 있는 사람, 기적을 행하는 사람을 보고 감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은 내가 능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손을 빌려, 내 입술을 빌려, 내 삶을 빌려 일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스게와의 아들들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주장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거나, 미움과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에 쓰여 있다"고 말하는 것들이 그 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이렇게 남용되는 것을 보시며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요?
4. 철저한 회개와 결단
에베소 신자들은 은화 오만 개에 해당하는 마술책을 불태웠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과거였고, 그들의 안전망이었고, 그들의 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저 없이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이처럼 철저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께 주권을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가며: 하나님의 손이 되는 삶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깨끗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내가 하는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내 손이 하나님의 손이 되고, 내 입술이 하나님의 입술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제 손은 주님의 손입니다. 하나님 제 입술은 주님의 입술입니다. 주님께서 사용하고자 하실 때 언제든 내어드리겠습니다. 사용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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